정사횡(鄭思竑)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15C0ACD6A1B1563X0 |
| 자(字) | 여인(汝仁) |
| 호(號) | 매헌(梅軒) |
| 생년 | 1563(명종 18) |
| 졸년 | 1640(인조 18)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경주(慶州) |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 부 | 정승복(鄭承復) |
| 출신지 | 전라남도 순천(順天) |

[상세내용]
정사횡(鄭思竑)
1563년(명조 18)∼1640년(인조 18). 조선 중기 의병. 자는 여인(汝仁), 호는 매헌(梅軒).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출신지는 전라남도 순천(順天)이다. 좌찬성(左贊成) 정지년(鄭知年)의 후예이고, 경상도수군우후(慶尙道水軍虞侯) 정승복(鄭承復)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학업에 매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모친의 시묘를 하던 중이었으나, 조정의 식량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조카와 함께 의곡(義穀) 천여 석을 모아, 뱃길로 의주(義州) 행재소까지 운반하였다. 조정에서 그의 충절에 탄복하여 지평(持平) 벼슬을 내렸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수백 석의 군량미를 모아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 들어갔다. 노량해전에 참전하여 적선을 격퇴하는 등 큰 공을 세워, 나라에서 좌통례(左通禮) 벼슬을 내렸다. 정조 때 좌승지(左承旨)를 증직하고, 1872년(고종 9)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추증(追贈)하였다. 1821년(순조 21)에 순천 명말(椧末)마을에 있는 옥계서원(玉溪書院)에 배향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학업에 매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모친의 시묘를 하던 중이었으나, 조정의 식량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조카와 함께 의곡(義穀) 천여 석을 모아, 뱃길로 의주(義州) 행재소까지 운반하였다. 조정에서 그의 충절에 탄복하여 지평(持平) 벼슬을 내렸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수백 석의 군량미를 모아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 들어갔다. 노량해전에 참전하여 적선을 격퇴하는 등 큰 공을 세워, 나라에서 좌통례(左通禮) 벼슬을 내렸다. 정조 때 좌승지(左承旨)를 증직하고, 1872년(고종 9)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추증(追贈)하였다. 1821년(순조 21)에 순천 명말(椧末)마을에 있는 옥계서원(玉溪書院)에 배향하였다.
[참고문헌]
승주군사
순조실록
고종일기
서원(이상해, 열하당, 2002)
순조실록
고종일기
서원(이상해, 열하당, 2002)
[집필자]
전주원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