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영(李春英){2}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D98C601B1563X0 |
자(字) | 실지(實之) |
호(號) | 체소재(體素齋) |
시호(諡號) | 문숙(文肅) |
생년 | 1563(명종 18) |
졸년 | 1606(선조 39)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윤조(李胤祖) |
저서 | 『체소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춘영(李春英)
1563년(명종 18)∼1606년(선조 39). 조선 중기의 문신‧문장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실지(實之), 호는 체소재(體素齋). 이윤조(李胤祖)의 아들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검열이 제수되었으나 정철(鄭澈)이 파직당할 때 연루되어 삼수(三水)로 귀양갔다.
1592년에 풀려나 다시 검열과호조좌랑을 거쳐 임진왜란이 격심하여지자 소모관(召募官)으로 충청‧전라도를 순행하였고, 이어 초계제술문관(抄啓製述文官)이 되어 중국에 구원을 청하는 주문(奏文)을 초하였다.
1601년 예천군수를 마지막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또, 임진왜란 때 타버린 선대의 실록을 보수할 때 공조정랑 겸 춘추관기사관으로 참여하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해동사부(海東辭賦)』에 그의 작품이 실려 전한다. 좌찬성이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체소집』 3권이 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검열이 제수되었으나 정철(鄭澈)이 파직당할 때 연루되어 삼수(三水)로 귀양갔다.
1592년에 풀려나 다시 검열과호조좌랑을 거쳐 임진왜란이 격심하여지자 소모관(召募官)으로 충청‧전라도를 순행하였고, 이어 초계제술문관(抄啓製述文官)이 되어 중국에 구원을 청하는 주문(奏文)을 초하였다.
1601년 예천군수를 마지막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또, 임진왜란 때 타버린 선대의 실록을 보수할 때 공조정랑 겸 춘추관기사관으로 참여하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해동사부(海東辭賦)』에 그의 작품이 실려 전한다. 좌찬성이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체소집』 3권이 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體素集
牛溪集
體素集
牛溪集
[집필자]
김재렬(金在烈)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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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