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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남(金悌男)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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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공언(恭彦)
시호(諡號)의민(懿愍)
생년1562(명종 17)
졸년1613(광해군 5)
시대조선중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오(金祦)
외조부권상(權常)

[상세내용]

김제남(金悌男)
1562년(명종 17)∼1613년(광해군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언(恭彦).

부친은 증영의정 김오(金祦)이며, 모친은 안동권씨권상(權常)의 딸이다. 선조의 장인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4년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거쳐, 1596년 연천현감을 지냈다.

159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01년 정언헌납지평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었다.

1602년 둘째딸이 선조의 계비(仁穆王后)로 뽑힘으로써 돈녕도정이 되고, 책비(冊妃)되자 영돈녕부사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으로 봉해졌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 등에 의해 인목왕후 소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했다는 공격을 받아 사사되었으나, 1616년에 폐모론이 일어나면서 다시 부관참시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뒤에 관작이 복구되고 왕명으로 사당이 세워졌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의민(懿愍)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淸選考
國朝榜目

[집필자]

김동수(金東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