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허(金太虛)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D0DCD5C8B1555X0 |
자(字) | 여보(汝寶) |
호(號) | 박연정(博淵亭) |
시호(諡號) | 양무(襄武) |
생년 | 1555(명종 10) |
졸년 | 1620(광해군 1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부 | 김희로(金希魯) |
공신호 |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
[상세내용]
김태허(金太虛)
1555년(명종 10)∼1620년(광해군 12).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보(汝寶), 호는 박연정(博淵亭).
부친은 호조참판 김희로(金希魯)이다.
1580년(선조 13) 무과에 급제, 옥포만호(玉浦萬戶)가 되었다. 인품이 충직 순박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밀양성이 함락된 뒤 밀양부사로 임명되어 분전하였다. 이어 울산군수로 전임되고, 울산성전투에서 도원수 권율(權慄)을 도와 큰 전공을 세워 당상관에 올랐다.
1599년 성주목사를 거쳐,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며,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오위도총부도총관‧호위대장을 역임하였으며, 그뒤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부친은 호조참판 김희로(金希魯)이다.
1580년(선조 13) 무과에 급제, 옥포만호(玉浦萬戶)가 되었다. 인품이 충직 순박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밀양성이 함락된 뒤 밀양부사로 임명되어 분전하였다. 이어 울산군수로 전임되고, 울산성전투에서 도원수 권율(權慄)을 도와 큰 전공을 세워 당상관에 올랐다.
1599년 성주목사를 거쳐,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며,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오위도총부도총관‧호위대장을 역임하였으며, 그뒤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嶺南人物考
嶺南人物考
[집필자]
김석희(金錫禧)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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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