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희(成天禧)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31CC9CD76CB1553X0 |
자(字) | 중길(仲吉) |
생년 | 1553(명종 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창녕(昌寧)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부 | 성호(成灝) |
공신호 |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
[상세내용]
성천희(成天禧)
1553년(명종 8)∼미상. 조선 전기의 의병장.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길(仲吉). 현감 성호(成灝)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순위(忠順衛)로 창녕에서 창의(倡義) 기병(起兵)하여 창녕의 가장(假將)이 되고 별장 조열(曺悅), 소모관(召募官) 성안의(成安義)와 함께 낙동강 좌안지방의 여러 고을의 방위와 수복을 위하여 여러 번 공을 세우고, 8월에는 조열 등과 병사 1천여인을 이끌고 창녕에서 적군을 공격, 종일 분전하여 적을 물리쳤다. 이 공으로 웅천현감이 되고 다시 훈련원정이 되었다.
병조좌랑에 추증되고 형조참의에 가증(加贈)되었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1등에 책록되었다.
1592년(선조 25)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순위(忠順衛)로 창녕에서 창의(倡義) 기병(起兵)하여 창녕의 가장(假將)이 되고 별장 조열(曺悅), 소모관(召募官) 성안의(成安義)와 함께 낙동강 좌안지방의 여러 고을의 방위와 수복을 위하여 여러 번 공을 세우고, 8월에는 조열 등과 병사 1천여인을 이끌고 창녕에서 적군을 공격, 종일 분전하여 적을 물리쳤다. 이 공으로 웅천현감이 되고 다시 훈련원정이 되었다.
병조좌랑에 추증되고 형조참의에 가증(加贈)되었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1등에 책록되었다.
[참고문헌]
昌寧誌
龍蛇日記
昌寧成氏貞節公派譜
龍蛇日記
昌寧成氏貞節公派譜
[집필자]
김석희(金錫禧)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