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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택(金應澤)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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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취용(就用)
호(號)백암(伯巖)
시호(諡號)문절(文節)
생년1551(명종 6)
졸년1597(선조 30)
시대조선중기
본관의성(義城)
활동분야무신 > 무신
김순번(金順番)

[상세내용]

김응택(金應澤)
1551년(명종 6)∼1597년(선조 30).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취용(就用), 호는 백암(伯巖).

부친은 참봉(參奉)을 지낸 김순번(金順番)이다.

어릴 적부터 곧고 굳센 성격에 규율 있는 생활을 하였고, 나이 18세 때 도산(陶山)에 공부하려 가니, 퇴계(退溪) 이황이 그의 방강(方剛)하고 정직한 품행에 대해 칭찬하였다. 후에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란왜란이 일어나자 마을 뒤로 왜군 17명이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백암산(栢巖山) 속 협곡에서 잠복해 있다가 뛰어 들어 모조리 잡았다. 권응수(權應銖) 장군의 진영에 들어가 여러 의병장들과 함께 영천성(永川城) 수복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공훈을 세웠다. 또 독자암(獨子巖)창암(蒼巖)울산(蔚山)학성(鶴城)도천(道川) 등지에서 전투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1594년(선조 27) 훈련원부정(訓練院副正)으로 언양(彦陽)에서 적을 만나 무찌르고, 이듬해 훈련원정이 되었다. 그리고 영천, 경주, 울산 사이를 드나들며 수 십 차례 적을 무찔렀다.

정유재란 때에 다시 권응수 장군과 체찰사(體察使) 이용순(李用淳), 병마사(兵馬使) 김응서(金應瑞) 등과 함께 달성에서 싸웠고, 1597년에 울산 서생포(西生浦) 전투에서 권응수 장군의 재종제(再從弟)인 권응심(權應心)과 함께 진종일 적과 싸우다가 불행하게도 적의 화살에 맞아 쓰러져 순국했다. 김득추가 초혼하여 돌아와 장사 지내고, 이 사실을 조정에 알려 원종 2등 공신에 녹선되었다.

철종 때 선비들이 상소하여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증직되고 백암사(柏巖祠)에 제향되었다. 1979년에 구천서원(龜川書院)에 추향되었다.

[참고문헌]

慶州邑誌

[집필자]

김영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