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최상중(崔尙重)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D5CC0C1C911B1551X0
자(字)여후(汝厚)
호(號)미능재(未能齋)
생년1551(명종 6)
졸년1604(선조 37)
시대조선중기
본관삭녕(朔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최영(崔穎)
외조부송구(宋駒)

[상세내용]

최상중(崔尙重)
1551년(명종 6)∼1604년(선조 3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여후(汝厚), 호는 미능재(未能齋).

영의정 최항(崔恒)의 6대손으로, 어모장군 최영(崔穎)의 아들이며, 모친은 현감 송구(宋駒)의 딸이다. 유희춘(柳希春)의 문인이다.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원수 권율(權慄)의 계청(啓請)으로 그의 종사관이 되어 5, 6년간 그를 보필하였다.

그뒤 검열예문관봉교헌납지평장령사간교리 등을 역임하고 1602년 사간을 끝으로 관직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선견지명이 있어서 정인홍(鄭仁弘)이 화심(禍心)을 품고 있다고 첫눈에 알아보았다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는 호남을 내왕할 때 쌀을 가지고 다니며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도승지에 추증되었다가 아들 최연(崔葕)의 공으로 대사헌에 가증되었으며, 남원노봉서원(露峰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東岡集

[집필자]

이동길(李東吉)

명 : "상중(尙重)"에 대한 용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