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번(朴廷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815BC88B1550X0 |
자(字) | 군신(君臣) |
호(號) | 학암(鶴巖) |
생년 | 1550(명종 5) |
졸년 | 1611(광해군 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고령(高靈)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박일(朴溢) |
모 | 여흥민씨(驪興閔氏) |
외조부 | 민종건(閔宗鶱) |
[상세내용]
박정번(朴廷璠)
1550년(명종 5)∼1611년(광해군 3).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군신(君臣), 호는 학암(鶴巖).
부친은 종성판관 박일(朴溢)이며, 모친은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종건(閔宗鶱)의 딸이다.
박성(朴惺)‧박월(朴越) 등과 동문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형 정완(廷琬)과 더불어 왜구와 대항하여 싸웠다. 왜란이 끝나고 공을 논할 때 자신의 공적은 드러내지 않고 형만을 내세우는 덕성이 있었다.
1605년부터는 당대의 유명한 학자인 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 등과 더불어 『심경』을 가르치며 후진양성에 힘썼다. 한때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지내기도 하였다.
고령 문연서원(文淵書院)에 제향되고,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부친은 종성판관 박일(朴溢)이며, 모친은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종건(閔宗鶱)의 딸이다.
박성(朴惺)‧박월(朴越) 등과 동문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형 정완(廷琬)과 더불어 왜구와 대항하여 싸웠다. 왜란이 끝나고 공을 논할 때 자신의 공적은 드러내지 않고 형만을 내세우는 덕성이 있었다.
1605년부터는 당대의 유명한 학자인 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 등과 더불어 『심경』을 가르치며 후진양성에 힘썼다. 한때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지내기도 하였다.
고령 문연서원(文淵書院)에 제향되고,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황준연(黃俊淵)
성명 : "박정번(朴廷璠)"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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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