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문(趙應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751BB38B1549X0 |
자(字) | 일관(一貫) |
호(號) | 무민(無悶) |
생년 | 1549(명종 4) |
졸년 | 1611(광해군 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한양(漢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징(趙澄) |
외조부 | 이정주(李呈珠) |
[상세내용]
조응문(趙應文)
1549년(명종 4)∼1611년(광해군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일관(一貫), 호는 송호(松湖) 또는 무민(無悶).
부친은 연안부사 첨지 조징(趙澄)이며, 모친은 영화정(永花正) 이정주(李呈珠)의 딸이다.
1594년(선조 27) 부사과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에 제수된 이래 각 조 좌랑을 역임하였고, 접반관(接伴官)으로 명장(明將)을 수종하여 호남을 돌았다.
그뒤 각 조의 정랑, 사헌부장령‧남양부사‧사옹원정‧군기시정‧연안부사‧종부시정 등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 종부시정으로 있을 때 종친들의 친제(親祭)참여를 검칙하지 않았다는 사헌부의 상소로 교체되었다.
성품이 온후하고 독실하며 인정이 많았고, 친구들과 술마시기를 즐겼다.
부친은 연안부사 첨지 조징(趙澄)이며, 모친은 영화정(永花正) 이정주(李呈珠)의 딸이다.
1594년(선조 27) 부사과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에 제수된 이래 각 조 좌랑을 역임하였고, 접반관(接伴官)으로 명장(明將)을 수종하여 호남을 돌았다.
그뒤 각 조의 정랑, 사헌부장령‧남양부사‧사옹원정‧군기시정‧연안부사‧종부시정 등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 종부시정으로 있을 때 종친들의 친제(親祭)참여를 검칙하지 않았다는 사헌부의 상소로 교체되었다.
성품이 온후하고 독실하며 인정이 많았고, 친구들과 술마시기를 즐겼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조정기(趙楨基)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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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