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吳們)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2C624BB38FFFFB1546X0 |
| 이명(異名) | 오한(吳僩) |
| 자(字) | 의숙(毅叔) |
| 호(號) | 수오당(守吾堂) |
| 생년 | 1546(명종 1) |
| 졸년 | 1589(선조 22)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함양(咸陽)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오세강(吳世綱) |

[상세내용]
오문(吳們)
1546년(명종 1)∼1589년(선조 22). 본관은 함양(咸陽), 다른 이름은 오한(吳僩). 자는 의숙(毅叔), 호는 수오당(守吾堂).
오세강(吳世綱)의 아들이고, 덕계(德溪) 오건(吳健: 1521∼1574)의 아우이다. 일찍이 종형(從兄) 오건(吳健)에게 글을 배웠는데 학업에 충실하였다. 후에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 나아갔는데, 논의하는 바가 빼어났으며 태도와 행실에 조신(操身)하여서, 주위 사람들이 높이 떠받들었다. 만년에는 뛰어난 재주를 지녔던 아들을 잃고 진주 모곡(茅谷)으로 이주하여 과거에 뜻을 접고 정신을 학문에만 쏟았다. 손에는 항상 명(明)나라 초기의 문인 경헌(敬軒) 설선(薛瑄)의 『독서록(讀書錄)』을 놓지 않고 들고 다녔다. 그가 죽은 후에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 1529∼1590), 각재(覺齋) 하항(河沆: 1538∼1590) 등이 모두 와서 곡(哭)을 하고 상(喪)을 치렀다. 그의 시편(詩篇)이 적지 않았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서계서원(西溪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오세강(吳世綱)의 아들이고, 덕계(德溪) 오건(吳健: 1521∼1574)의 아우이다. 일찍이 종형(從兄) 오건(吳健)에게 글을 배웠는데 학업에 충실하였다. 후에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 나아갔는데, 논의하는 바가 빼어났으며 태도와 행실에 조신(操身)하여서, 주위 사람들이 높이 떠받들었다. 만년에는 뛰어난 재주를 지녔던 아들을 잃고 진주 모곡(茅谷)으로 이주하여 과거에 뜻을 접고 정신을 학문에만 쏟았다. 손에는 항상 명(明)나라 초기의 문인 경헌(敬軒) 설선(薛瑄)의 『독서록(讀書錄)』을 놓지 않고 들고 다녔다. 그가 죽은 후에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 1529∼1590), 각재(覺齋) 하항(河沆: 1538∼1590) 등이 모두 와서 곡(哭)을 하고 상(喪)을 치렀다. 그의 시편(詩篇)이 적지 않았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서계서원(西溪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김학경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