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趙瑗)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70C6D0FFFFB1544X0 |
자(字) | 백옥(伯玉) |
호(號) | 운강(雲江) |
생년 | 1544(중종 39) |
졸년 | 1595(선조 2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임천(林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응관(趙應寬) |
생부 | 조응공(趙應恭) |
조부 | 조익(趙翊) |
처부 | 이준민(李俊民) |
저서 | 『독서강의(讀書講疑)』 |
[관련정보]
[상세내용]
조원(趙瑗)
1544년(중종 39)∼1595년(선조 2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백옥(伯玉), 호는 운강(雲江). 조익(趙翊)의 손자로, 조응공(趙應恭)의 아들이며, 조응관(趙應寬)에게 입양되었다. 판서 이준민(李俊民)의 사위이다.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였고, 1572년(선조 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75년 정언이 되어 이해 당쟁이 시작되자, 그에 대한 탕평의 계책을 상소하여 당파의 수뇌를 파직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이듬해 이조좌랑이 되고, 1583년 삼척부사로 나갔다가 1593년 승지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또 자손의 교육도 단엄(端嚴)하였다.
저서로는 『독서강의(讀書講疑)』가 있으며, 유고로는 『가림세고(嘉林世稿)』가 있다.
1575년 정언이 되어 이해 당쟁이 시작되자, 그에 대한 탕평의 계책을 상소하여 당파의 수뇌를 파직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이듬해 이조좌랑이 되고, 1583년 삼척부사로 나갔다가 1593년 승지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또 자손의 교육도 단엄(端嚴)하였다.
저서로는 『독서강의(讀書講疑)』가 있으며, 유고로는 『가림세고(嘉林世稿)』가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東儒師友錄
國朝人物志
增補文獻備考
國朝榜目
東儒師友錄
國朝人物志
增補文獻備考
[집필자]
이동길(李東吉)
명 : "원(瑗)"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