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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李邦柱)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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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임중(任重)
자(字)여경(汝擎)
자(字)중경(重卿)
생년1542(중종 37)
졸년1597(선조 30)
시대조선중기
본관함평(咸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준(李俊)
조부이정전(李庭荃)
증조부이종우(李從愚)
처부송정수(宋廷秀)
출신지전라남도 담양(潭陽)

[상세내용]

이방주(李邦柱)
1542년(중종 37)∼1597년(선조 30).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효자. 자는 임중(任重), 여경(汝擎), 중경(重卿)이다.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전라남도 담양(潭陽) 출신이다.

기묘명현(己卯名賢) 이종우(李從愚)의 증손이며, 조부는 이정전(李庭荃), 부친은 이준(李俊)이다. 처부는 송정수(宋廷秀)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지효하여 부모를 정성껏 섬기었다. 부친의 상을 당하자, 소찬으로 겨우 연명하며 예를 다하여 치상여, 타인의 귀감이 되었다.

1558년(명종 13) 무오 식년시(式年試) 진사 2등 14위로 합격하고, 1570년(선조 3) 경오 식년시(式年試) 갑과(甲科) 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6년(선조 9) 대동찰방(大同察訪)을 거쳐, 1583년(선조 16) 무장현감(茂長縣監)에 재직할 때에 황조(荒租) 1만여 섬의 부실이 호조낭청(戶曹郎廳)에게 적발되어 나추(拿推)당하였으며, 1594년(선조 27) 고부군수(古阜郡守)를 지내고,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관직을 버리고 담양에 귀향하여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송강(松江) 정철(鄭澈),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등과 내왕하면서 도학을 강론하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가솔을 이끌고 피난을 가는 도중에, 왜적을 만나 부자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참고문헌]

전라남도지
조선왕조선조실록
한국고전번역원(http://www.itkc.or.kr/)

[집필자]

전주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