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빈(李廷賓)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815BE48B1539X0 |
자(字) | 경관(景觀) |
생년 | 1539(중종 34) |
졸년 | 1592(선조 25)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양(李樑) |
[상세내용]
이정빈(李廷賓)
1539년(중종 34)∼1592년(선조 25).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관(景觀). 명종 때의 권신 이양(李樑)의 아들이다.
1563년(명종 18) 유학으로 알성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는데, 그 자신은 학문적 소양이 없었으나, 아버지가 시제(試題)를 미리 알고서 답안지를 대신 작성하였다고 한다. 곧 병조좌랑‧정언을 거쳐, 급제 후 4개월 만에 이조좌랑이 되었지만 아버지가 이조판서가 되자 상피제(相避制)에 의하여 정언으로 전직되었다.
이때 그의 후임으로 친구인 유영길(柳永吉)을 추천하여 대간의 심한 반대를 받았으나, 대간이 오히려 삭직 및 외직으로 전출되었다. 아버지가 제거되자 관작을 삭탈당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적에 의하여 피살되었다.
1563년(명종 18) 유학으로 알성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는데, 그 자신은 학문적 소양이 없었으나, 아버지가 시제(試題)를 미리 알고서 답안지를 대신 작성하였다고 한다. 곧 병조좌랑‧정언을 거쳐, 급제 후 4개월 만에 이조좌랑이 되었지만 아버지가 이조판서가 되자 상피제(相避制)에 의하여 정언으로 전직되었다.
이때 그의 후임으로 친구인 유영길(柳永吉)을 추천하여 대간의 심한 반대를 받았으나, 대간이 오히려 삭직 및 외직으로 전출되었다. 아버지가 제거되자 관작을 삭탈당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적에 의하여 피살되었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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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