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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李首慶)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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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희(伯喜)
호(號)지재(止齋)
생년1516(중종 11)
졸년1562(명종 18)
시대조선전기
본관광주(廣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영부(李英符)
조부이반(李攀)
증조부이극견(李克堅)
외조부이효완(李孝完)

[상세내용]

이수경(李首慶)
1516년(중종 11)∼1562년(명종 18).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백희(伯喜). 호는 지재(止齋). 이극견(李克堅)의 증손으로, 조부는 이반(李攀)이고, 부친은 이영부(李英符)이며, 모친은 이효완(李孝完)의 딸이다.

1538년(중종 3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1년(중종 36) 주서(注書)를 거쳐 정언이 되었다. 이때 국왕이 홍문관의 차자(箚子: 간단한 서식을 갖춰 왕에게 올리는 글)를 두고 변명의 구실을 찾자 이는 언로(言路)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여론에도 좋지 않다고 직언하였다.

1544년(중종 39) 헌납이 되어서 조광조(趙光祖)의 죄를 대변하면서 ‘조광조가 옛날을 사모하여 과격하게 하였다는 것으로 죄를 주는 것은 마땅하지만, 한때의 잘못 때문에 영구히 그의 직첩을 거두어 버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하였다.

1546년(명종 1) 시독관을 거쳐 사예(司藝)가 되었다. 이때 이휘(李煇)이중열(李仲悅) 등의 역모에 연루되어 함경도 온성(穩城)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이는 윤원형(尹元衡) 일파인 진복창(陳復昌)이 그를 미워하여 폄출(貶黜: 벼슬을 강등시키고 쫓아냄)한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하여 원종공신록(原宗功臣錄)에서 훈적(勳籍: 공훈을 기록한 문서)을 박탈당하고, 1551년(명종 6) 유배지 온성에서 서울 가까운 곳으로 옮겨졌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