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귀행(安貴行)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548ADC0D589B1423X0 |
자(字) | 이회(以晦) |
호(號) | 백산(白山) |
생년 | 1423(세종 5) |
졸년 | 1504(연산군 10)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순흥(順興) |
활동분야 | 기타 > 처사 |
부 | 안경의(安敬義) |
[상세내용]
안귀행(安貴行)
1423년(세종 5)~1504년(연산군 10). 자는 이회(以晦), 호는 백산(白山). 본관은 순흥(順興).
안경의(安敬義)의 아들이다.
1444년(세종 26)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지냈다. 세조(世祖)가 단종(端宗)의 왕위를 찬탈하자 양성현감(陽城縣監)으로 나아갔다. 드디어는 벼슬을 버리고 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으며, 단종의 기일(忌日)에 소복을 입고 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세조가 장령(掌令)을 내려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가 죽은 뒤 대사간(大司諫)에 추증되었으며, 남계사(藍溪祠)에 배향(配享)되었다.
안경의(安敬義)의 아들이다.
1444년(세종 26)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지냈다. 세조(世祖)가 단종(端宗)의 왕위를 찬탈하자 양성현감(陽城縣監)으로 나아갔다. 드디어는 벼슬을 버리고 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으며, 단종의 기일(忌日)에 소복을 입고 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세조가 장령(掌令)을 내려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가 죽은 뒤 대사간(大司諫)에 추증되었으며, 남계사(藍溪祠)에 배향(配享)되었다.
[참고문헌]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김성수
대표명 | 안귀행(安貴行) |
성명 | 안귀행(安貴行) |
성명 : "안귀행(安貴行)"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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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1-01-05 | 족보, 白山安公墓表, 龍城誌를 참고하여 생졸년을 추가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