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성군(宣城君)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20C131AD70U9999X0 |
이명(異名) | 이무생(李茂生) |
시호(諡號) | 양정(良精)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왕실 > 종친 |
부 | 정종(定宗) |
외조부 | 지윤(池奫) |
[상세내용]
선성군(宣城君)
생졸년 미상. 이름은 이무생(李茂生).
정종(定宗)의 4남으로 모친은 충주지씨 고려 찬성사 지윤(池奫)의 딸이다.
정종이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풍덕(豊德)의 강가로 물러나자 선성군은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렸으며 담백하고 조용한 마음을 스스로 지켜 권세와 존귀함을 싫어하였다.이무생은 1427년(세종 9) 자동선‧간설매‧죽간매를 간통한 혐의로 배천(白川)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종친(宗親)의 예에 의거하여 종학(宗學)에 나왔다는 기사가 세종 12년에 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 되지 않아 유배 생활에서 풀려난 듯하다.
1444년(세종 26) 다시 주색을 좋아하고, 병을 핑계하고 학문을 게을리한 것 때문에 다시 배천으로 유배되었다.
1454년(단종 2) 3월에 중의대부에 오르고 선성군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에 창기 탁금아(濯錦兒)를 사랑하여 정처를 내쫓은 일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1872년(고종 9) 3월 고종 조에 상보국숭록대부 영종정경으로 추증되었다. 시호는 양정(良精)이다.
정종(定宗)의 4남으로 모친은 충주지씨 고려 찬성사 지윤(池奫)의 딸이다.
정종이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풍덕(豊德)의 강가로 물러나자 선성군은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렸으며 담백하고 조용한 마음을 스스로 지켜 권세와 존귀함을 싫어하였다.이무생은 1427년(세종 9) 자동선‧간설매‧죽간매를 간통한 혐의로 배천(白川)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종친(宗親)의 예에 의거하여 종학(宗學)에 나왔다는 기사가 세종 12년에 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 되지 않아 유배 생활에서 풀려난 듯하다.
1444년(세종 26) 다시 주색을 좋아하고, 병을 핑계하고 학문을 게을리한 것 때문에 다시 배천으로 유배되었다.
1454년(단종 2) 3월에 중의대부에 오르고 선성군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에 창기 탁금아(濯錦兒)를 사랑하여 정처를 내쫓은 일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1872년(고종 9) 3월 고종 조에 상보국숭록대부 영종정경으로 추증되었다. 시호는 양정(良精)이다.
[참고문헌]
璿源系譜紀略
[집필자]
심량근
대표명 | 선성군(宣城君) |
봉호 | 선성군(宣城君) |
봉호 : "선성군(宣城君)"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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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