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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남(鄭玉男)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815C625B0A8D1589X0
생년?(미상)
졸년1589(선조 22)
시대조선전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변란 > 모반인
정여립(鄭汝立)

[상세내용]

정옥남(鄭玉男)
미상∼1589년(선조 22). 조선 중기의 모역인. 본관은 동래(東萊).

정여립(鄭汝立)의 아들이다.

정여립의 모역사건이 발각되자 금구의 별장을 떠나 아버지와 함께 진안죽도(竹島)로 도망하였다가 관군의 포위가 좁혀들자 부친은 자살하였고, 정옥남박연령(朴延齡)의 아들 박춘룡(朴春龍)진안현감 민인백(閔仁伯)에게 잡혀 문초를 받은 뒤 길삼봉(吉三峰)이 모주라고 자백하고 죽음을 당하였다.

이 때문에 뒷날 진주의 처사 최영경(崔永慶)길삼봉으로 지목되어 죽임을 당하고 옥사가 크게 확대되었다.

[참고문헌]

宣祖修正實錄
光海君日記
隱峰全書
鄭鑑錄의 反亂―鄭汝立―(金奎聲, 韓國의 人間像 2, 新丘文化社, 1980)

[집필자]

김동수(金東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2-02-03"정여립의 모역사건이 발각되자 아버지와 함께 진안의 죽도(竹島)로 도망하였다가 박연령(朴延齡)의 아들 춘룡(春龍)과 함께 진안현감 민인백(閔仁伯)에게 잡혀 문초를 받은 뒤 길삼봉(吉三峰)이 모주라고 자백하고 죽음을 당하였다."을 "정여립의 모역사건이 발각되자 금구의 별장을 떠나 아버지와 함께 진안의 죽도(竹島)로 도망하였다가 관군의 포위가 좁혀들자 부친은 자살하였고, 정옥남과 박연령(朴延齡)의 아들 박춘룡(朴春龍)은 진안현감 민인백(閔仁伯)에게 잡혀 문초를 받은 뒤 길삼봉(吉三峰)이 모주라고 자백하고 죽음을 당하였다."로 수정함.[수정자: 이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