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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포(朴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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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1400(정종 2)
시대조선전기
활동분야무신 > 무신
공신호정사공신(定社功臣)

[관련정보]

[상세내용]

박포(朴苞)
미상∼1400년(정종 2). 조선 초기의 무신.

조선의 건국에 대장군으로서 공이 있어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고, 1398년(태조 7) 제1차왕자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지중추원사가 되었으나, 자기는 논공(論功)에서 2등이 되고 이무(李茂)는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봉된 것을 비방하였다가 도리어 죽주(竹州)에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에 소환되었다.

다시 제2차왕자의 난에 간여하였다. 회안군(懷安君) 방간(芳幹)의 집에 가서 장기를 두었는데 마침 우박이 오며 하늘에 붉은 빛의 기운이 나타났다. 방간에게 겨울에 비가 오고 하늘에 요사한 기운이 있음을 들어 근신할 것을 청하자 방간이 그 처신의 방법을 물었다. 방간에게 군사를 맡지 말며 출입을 삼가고 의관을 정제하여 행동을 신중히 하여, 마치 고려조 자손인 여러 왕씨의 예와 같이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였다.

이에 방간은 그러한 방책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또다른 방책을 요구하자 “주(周)나라 태왕에게 아들 셋이 있었는데, 그 중 막내아들인 왕계(王季)에게 왕위를 전할 뜻이 있으므로, 왕계의 두 형인 태백(泰伯)중옹(仲雍)형만(荊蠻)으로 도망하던 것과 같이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그러나 방간이 또다른 방책을 요구하자 “정안군(靖安君)은 군사가 강하여 많은 무리가 붙어 있고, 방간의 군사는 약하며 위태함이 마치 아침이슬과 같으므로 먼저 선수를 써서 쳐부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방간이 이 말을 좇아 군사를 일으켰는데 이때 공신 중에는 다만 박포장사길(張思吉)만이 따르고, 그 나머지는 모두 방원(芳遠: 뒤의 태종)을 좇았다. 방간의 군사가 패하자 방간토산(兎山)으로 귀양을 가고, 그는 방간을 꾀어 난을 일으킨 죄목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燃藜室記述

[집필자]

이재룡(李載龒)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