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南景祐)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0A8ACBDC6B0D1467X0 |
시호(諡號) | 안호(安胡) |
생년 | 1393(태조 2) |
졸년 | 1467(세조 13)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의령(宜寧)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남은(南誾) |
조부 | 남을번(南乙番) |
[관련정보]
[상세내용]
남경우(南景祐)
1393년(태조 2)∼1467년(세조 13).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조부는 의령부원군 남을번(南乙番)이고, 부친은 개국공신 남은(南誾)이다.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가, 1441년(세종 23) 중추원부사가 된 뒤 중추원사를 거쳐, 형조참판‧사헌부지평‧경주부윤‧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조급하며 특별한 재능이 없음에도 관품이 종1품에 이르자 주위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다.
특히, 1454년(단종 2)에는 학생 심중륜(沈中倫)과 노비문제로 쟁송을 일으켜 몇 개월간 송사를 계속하여 조정의 지탄을 사기도 하였다.
그의 딸과 담양군(潭陽君) 이거(李渠: 세종의 아들) 사이에 혼담이 있었으나, 담양군이 일찍 죽음으로써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연경곡산군(延慶谷山君)에 봉해졌다가 뒤에 의성군(宜城君)으로 개칭되었다. 시호는 안호(安胡)이다.
조부는 의령부원군 남을번(南乙番)이고, 부친은 개국공신 남은(南誾)이다.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가, 1441년(세종 23) 중추원부사가 된 뒤 중추원사를 거쳐, 형조참판‧사헌부지평‧경주부윤‧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조급하며 특별한 재능이 없음에도 관품이 종1품에 이르자 주위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다.
특히, 1454년(단종 2)에는 학생 심중륜(沈中倫)과 노비문제로 쟁송을 일으켜 몇 개월간 송사를 계속하여 조정의 지탄을 사기도 하였다.
그의 딸과 담양군(潭陽君) 이거(李渠: 세종의 아들) 사이에 혼담이 있었으나, 담양군이 일찍 죽음으로써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연경곡산군(延慶谷山君)에 봉해졌다가 뒤에 의성군(宜城君)으로 개칭되었다. 시호는 안호(安胡)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淸選考
端宗實錄
世祖實錄
淸選考
[집필자]
이순구(李舜九)
명 : "경우(景祐)"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4-17 | 宜城君諡狀을 참고하여 생년 1393(태조 2), 조부 남을번, 부친 남은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