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영견(金永堅)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C601ACACU9999X0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김해(金海)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진손(金震孫)
공신호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상세내용]

김영견(金永堅)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증호조판서 김진손(金震孫)의 아들이며, 대사헌 김영정(金永貞)의 형이다.

1454년(단종 2) 수의(修義)로서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고, 1457년(세조 3) 대교(待敎)로서 문과중시에 정과에 다시 급제하였다.

1455년 기사관예문관검열『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세조 즉위시에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

1471년(성종 2) 전통례원상례(前通禮院相禮)로서 전라도에 파견되어 여러 읍의 실농(失農)을 살펴 흉년을 구제하고 도둑들의 유무와 농민들의 질병을 보살폈다.

또, 경차관으로 나아가 농민 가운데 배고파 죽는 자, 종기가 난 자, 떠돌아다니는 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수령을 죄줄 것을 청하였다. 같은해 사간이 되었고 편수관이 되어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 향표리 1습이 하사되었다.

1472∼1473년 사간시강관을 역임하고 이듬해 우부승지가 되어 여러 역사서들을 인쇄, 반포하라는 명을 받았다.

1475년 좌부승지가 되었는데 어머니의 병으로 사직할 뜻을 아뢰었으나 도리어 계급이 승진되어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478년 행첨지중추부사가 되었고 이어 동지중추부사로 전(箋)을 받들어 북경(北京)에 가서 천추절을 축하하고 왔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成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한희숙(韓嬉淑)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