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변(具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D6CBCC0FFFFB1529X0 |
자(字) | 시중(時仲) |
생년 | 1529(중종 2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능성(綾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구수복(具壽福) |
생부 | 구수연(具壽延) |
[관련정보]
[상세내용]
구변(具忭)
1529년(중종 24)∼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시중(時仲).
부친은 군수 구수연(具壽延)이다. 작은아버지인 정랑(正郞) 구수복(具壽福)의 양자로 입양되어 후사가 되었다.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1552년(명종 7)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58년에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承文院權知)로 있다가 1567년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1568년(선조 1) 이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뒤 다시 정언‧수찬 등을 거쳤다.
그러나 이듬해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 등의 당여(黨與)였기 때문에, 인물됨이 청요직(淸要職)에는 맞지 않는다는 김개(金鎧)의 상소에 의해 체직당하였다.
그뒤 진주목사로 나가서 최영경(崔永慶)과 함께 덕천동에 터를 잡고 서원을 세우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부친은 군수 구수연(具壽延)이다. 작은아버지인 정랑(正郞) 구수복(具壽福)의 양자로 입양되어 후사가 되었다.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1552년(명종 7)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58년에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承文院權知)로 있다가 1567년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1568년(선조 1) 이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뒤 다시 정언‧수찬 등을 거쳤다.
그러나 이듬해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 등의 당여(黨與)였기 때문에, 인물됨이 청요직(淸要職)에는 맞지 않는다는 김개(金鎧)의 상소에 의해 체직당하였다.
그뒤 진주목사로 나가서 최영경(崔永慶)과 함께 덕천동에 터를 잡고 서원을 세우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東儒師友錄
眉巖日記草
東儒師友錄
眉巖日記草
[집필자]
김동수(金東洙)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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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