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평(成世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31C138D3C9B1516X0 |
자(字) | 정중(正仲) |
생년 | 1516(중종 11) |
졸년 | 1590(선조 23)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창녕(昌寧)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성희주(成希周) |
[관련정보]
[상세내용]
성세평(成世平)
1516년(중종 11)∼1590년(선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중(正仲). 종부시정(宗簿寺正) 성희주(成希周)의 아들이다.
나이 10여세에 이미 경사(經史)에 통달하였으나 20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예에 지나칠 만큼 극진히 상사(喪事)를 돌보았으므로 학업은 거의 중단하였고, 따라서 과거에 늦게야 응시하게 되었다.
1546년(명종 1) 사마시를 거쳐 156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또 상을 당하여 3년을 지내게 되니 이미 나이는 50세가 되었고 이때 비로소 승문원에 등용되고, 전적‧공조좌랑을 거쳐 어천도찰방(魚川道察訪)으로 나갔다가 병으로 돌아왔다.
그뒤 여러 벼슬을 역임한 뒤 첨지중추부사에 이르고, 1590년(선조 23)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 전에 병사하였다.
나이 10여세에 이미 경사(經史)에 통달하였으나 20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예에 지나칠 만큼 극진히 상사(喪事)를 돌보았으므로 학업은 거의 중단하였고, 따라서 과거에 늦게야 응시하게 되었다.
1546년(명종 1) 사마시를 거쳐 156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또 상을 당하여 3년을 지내게 되니 이미 나이는 50세가 되었고 이때 비로소 승문원에 등용되고, 전적‧공조좌랑을 거쳐 어천도찰방(魚川道察訪)으로 나갔다가 병으로 돌아왔다.
그뒤 여러 벼슬을 역임한 뒤 첨지중추부사에 이르고, 1590년(선조 23)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 전에 병사하였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명 : "세평(世平)"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