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韓記)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D55CAE30FFFFB1490X0 |
자(字) | 원방(元方) |
생년 | 1490(성종 21) |
졸년 | 1558(명종 13)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왕실 > 부마 |
부 | 한형윤(韓亨允) |
처 | 정혜옹주(靜惠翁主) |
공신호 | 정국공신(靖國功臣) |
[상세내용]
한기(韓記)
1490년(성종 21)∼1558년(명종 13). 조선 성종의 부마.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원방(元方). 형조판서 한형윤(韓亨允)의 아들이다.
11세에 성종의 서녀(庶女) 정혜옹주(靜惠翁主)와 혼인하여 청명위(淸明尉)가 되었고,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성종의 후궁 숙의 정씨(淑儀鄭氏)의 사위라 하여 안산에 유배되었고, 그의 처 정혜옹주는 배천에 유배되었다.
중종반정 후 봉작이 복구되었고,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이 되었다. 천성이 인후(仁厚)하고 그의 지위와는 달리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총명박식하고 담설(談說)을 잘하였다.
11세에 성종의 서녀(庶女) 정혜옹주(靜惠翁主)와 혼인하여 청명위(淸明尉)가 되었고,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성종의 후궁 숙의 정씨(淑儀鄭氏)의 사위라 하여 안산에 유배되었고, 그의 처 정혜옹주는 배천에 유배되었다.
중종반정 후 봉작이 복구되었고,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이 되었다. 천성이 인후(仁厚)하고 그의 지위와는 달리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총명박식하고 담설(談說)을 잘하였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國朝人物考
國朝人物考
[집필자]
원영환(元永煥)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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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