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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추(任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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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균(士均)
시호(諡號)정헌(貞憲)
생년1482(성종 13)
졸년1534(중종 29)
시대조선전기
본관풍천(豊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임유겸(任由謙)
외조부이신(李愼)

[상세내용]

임추(任樞)
1482년(성종 13)∼1534년(중종 29).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사균(士均).

부친은 판서 임유겸(任由謙)이며, 모친은 이신(李愼)의 딸이다.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이어서 같은해의 식년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513년 지평을 지낸 뒤 다음해에 교리가 되었다.

1516년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천문이습관(天文肄習官)이 되었고, 이어서 장령이 되어 언관의 역할 및 언로의 개방에 대해서 상소하였다.

또, 경연에 참여하여 중국 사신이 올 때마다 일어나는 처녀선발 및 그에 따른 헛소문의 금지를 건의하였다. 이후 전한직제학좌부승지 등을 역임하고, 1526년 대사간이 되어 시정(時政)에 대한 장문의 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530년 좌승지경상도감사에 발탁되었고, 다음해에 한성우윤이 되었다. 그 다음해에 권신 김안로(金安老)에게 추부하지 않아 다시 강원감사로 외직에 나갔다.

1533년 그 자신은 동지사(冬至使)로, 아들은 서장관으로 함께 명나라에 파견되는 영광이 있었지만, 귀환중에 순직하였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典故大方

[집필자]

주웅영(朱雄英)
대표명임추(任樞)
추(樞)
성명임추(任樞)
시호정헌(貞憲)
사균(士均), 사균(士鈞)

명 : "추(樞)"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震乘總v3訣其精爽不昧如此年七十二子樞與弟權繼登高第玉立朝端風采淸峻斤安老幾陷罪官判書謚貞憲虎臣樞子有儒者氣像以冬至使如京虎臣爲書狀官時以鳳將雛比之判書謚貞簡
震乘總v3諸婦諸侄各皆與訣其精爽不昧如此年七十二子樞與弟權繼登高第玉立朝端風采淸峻斤安老幾陷罪官判書謚貞憲虎臣子有儒者氣像樞以冬至使如京虎臣爲書狀官時以鳳將雛比之判書謚貞簡
震乘總v3悅曰無己過乎諸子亦承厥志未嘗少以名位加人疾革戒諸子謹愼立朝至諸婦諸侄各皆與訣其精爽不昧如此年七十二子與弟權繼登高第玉立朝端風采淸峻斤安老幾陷罪官判書謚貞憲虎臣樞子有儒者氣像樞以冬至使如京虎臣爲書狀官時
小華龜鑑v5任權字士經號靜容由謙子弟也官判書諡貞憲○公兄弟五人皆富才業而公與兄樞實白眉之秀也望之者目爲雙珠公久居大官家無贏財扁堂曰靜容
小華龜鑑v5也官判書諡貞憲○公兄弟五人皆富才業而公與兄樞實白眉之秀也望之者目爲雙珠公久居大官家無贏財扁堂曰靜容○字士白官左尹赴京道卒金安老曰早逝得好沈彥光悔其由已困極乃曰昨指無及樞子虎臣判書輔臣參議○靜容嘗啓于中
大事編年v4相金克成判書兪汝林率六曹啓之任樞聞其詣闕欲同往問其弟揵曰小人無恥勝而後已況無可恃者乎以弟料之必無成也曰吾意正如此飮醇醪極辭而還已而荇等果敗
國朝人物志v1字士經之弟丁卯進士癸酉文科性剛直好危言讜論己卯北門禍作斥罷丁酉三奸敗復召用官至參贊諡靖憲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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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