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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번(金璠)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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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문서(文瑞)
생년1479(성종 10)
졸년1544(중종 39)
시대조선전기
본관안동(安東[新])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영수(金永銖)
외조부김박(金博)

[상세내용]

김번(金璠)
1479년(성종 10)∼1544년(중종 39).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문서(文瑞). 본관은 안동(安東[新]).

부친은 장령 김영수(金永銖)이며, 모친은 강릉김씨현령 김박(金博)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진사에 합격하고, 1513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군자감직장을 거쳐 성균관전적예조좌랑병조좌랑경기도사헌납이조정랑병조정랑예조정랑제용감첨정평양서윤시강원문학 등을 역임하였다.

전적관북 지방에 가뭄과 메뚜기 피해로 기근이 들어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삼남(三南)의 곡식을 조운할 마땅한 사람을 고르지 못할 때 낮은 관직으로 뽑혀 명성과 경륜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평양서윤이었던 1523년 관서 지방에 전염병이 만연하자, 둔전책(屯田策)을 건의하고 농업에 힘쓰고 민식(民食)과 창름(倉廩)을 넉넉히 하며 군졸에게 잡다한 세(稅)를 없애주어 백성의 주거를 편안하게 하였다.

그러나 뒤에 요승(妖僧) 학조(學祖)의 조카라 하여 탄핵을 받았고, 재물에 대한 탐욕이 지나쳐서 당시 사림들로부터 많은 기롱(譏弄)을 받았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범직(李範稷)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