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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거창신씨(廢妃居昌愼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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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472(성종 3)
졸년1536(중종 31)
시대조선전기
본관거창(居昌)
활동분야왕실 > 궁인
신승선(愼承善)

[상세내용]

폐비거창신씨(廢妃居昌愼氏)
1472년(성종 3)∼1536년(중종 31).

연산군(燕山君)의 부인으로 영의정(領義政)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며 좌의정 신수근(愼守勤)의 누이이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제인원덕왕비(齊仁元德王妃)”라는 존호를 받았으나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폐비가 되어 거창군부인으로 강등된다. 신씨연산군과는 달리 덕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신씨(愼氏)는 어진 덕이 있어 화평하고 후중하고 온순하고 근신하여, 아랫사람들을 은혜로써 어루만졌으며, 왕이 총애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妃)가 또한 더 후하게 대하므로, 왕은 비록 미치고 포학하였지만, 매우 소중히 여김을 받았다. 매양 왕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난, 방종함이 한없음을 볼 적마다 밤낮으로 근심하였으며, 때로는 울며 간하되 말 뜻이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했는데, 왕이 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내지는 않았다. 또 번번이 대군‧공주‧무보(姆保)‧노복들을 계칙(戒勅)하여 함부로 방자한 짓을 못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울부짖으며 기필코 왕을 따라 가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다.

연산군이 죽은 뒤에 신씨연산군의 신주를 직접 모신 것 같다. 그녀는 중종의 배려로 1521년(중종 16) 11월에 속공(屬公)한 죄인 안처겸(安處謙)의 집을 받는다.

1536년(중종 32) 4월에 죽으니 소생으로는 5남 1녀가 있다. 1530년(중종 25)에 낳자마자 곧 졸한 원손(元孫)과 이영수(李榮壽), 이총수(李聰壽), 폐세자 이황(李𩔇)창녕대군(昌寧大君) 이인(李仁), 휘신공주(徽愼公主)이다.

[참고문헌]

居昌愼氏世譜
朝鮮王朝實錄

[집필자]

심량근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