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탁(尹倬)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24D0C1FFFFB1472X0 |
자(字) | 명중(明仲) |
호(號) | 평와(平窩) |
생년 | 1472(성종 3) |
졸년 | 1534(중종 29)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윤사은(尹師殷)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탁(尹倬)
1472년(성종 3)∼1534년(중종 29).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명중(明仲), 호는 평와(平窩). 현감 윤사은(尹師殷)의 아들이다.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자 이심원(李深源)에게 수학하였다.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을 거쳐 전적이 되었으나, 1504년 갑자사화 때 삭녕에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어 사성‧대사성‧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를 역임하였으나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다시 파직되었다.
1525년 대사성을 거쳐 152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한 뒤 한성부좌윤이 되었다.
그뒤 1531년 성균관동지사(成均館同知事)를 거쳐 1534년 개성부유수를 역임하였다. 학문이 높아 조광조(趙光祖) 등 여러 대신들에게 도학(道學)을 가르쳤고 송인수(宋麟壽)‧이황(李滉) 등이 그의 강수(講授)를 이었다. 홍섬(洪暹)‧원황(元滉) 등 같은 벼슬에 있던 자들로부터 예우를 받았다.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자 이심원(李深源)에게 수학하였다.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을 거쳐 전적이 되었으나, 1504년 갑자사화 때 삭녕에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어 사성‧대사성‧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를 역임하였으나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다시 파직되었다.
1525년 대사성을 거쳐 152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한 뒤 한성부좌윤이 되었다.
그뒤 1531년 성균관동지사(成均館同知事)를 거쳐 1534년 개성부유수를 역임하였다. 학문이 높아 조광조(趙光祖) 등 여러 대신들에게 도학(道學)을 가르쳤고 송인수(宋麟壽)‧이황(李滉) 등이 그의 강수(講授)를 이었다. 홍섬(洪暹)‧원황(元滉) 등 같은 벼슬에 있던 자들로부터 예우를 받았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朝野輯要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朝野輯要
[집필자]
김용덕(金龍德)
명 : "탁(倬)"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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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