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달수(權達手)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D8CB2ECC218B1469X0 |
자(字) | 통지(通之) |
호(號) | 동계(桐溪) |
생년 | 1469(예종 1) |
졸년 | 1504(연산군 10)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안동(安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권임(權琳) |
[상세내용]
권달수(權達手)
1469년(예종 1)∼1504년(연산군 1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통지(通之), 호는 동계(桐溪).
부친은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 권임(權琳)이다.
1492년(성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1495년(연산군 1) 독서당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정언‧이조좌랑을 역임한 뒤 동지사의 종사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5년 대교(待敎)로서 검열 강징(姜澂)과 함께, 왕명을 내릴 때에는 승지와 사관(史官)이 반드시 참석하도록 건의하였다.
1498년 수찬에 올라 부교리를 역임하고, 1504년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종묘에 모시려 하자, 그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의금부에 하옥되어 장(杖) 60의 처벌을 받고 용궁(龍宮)에 유배되었다. 그해 11월 용궁에서 다시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던 중 옥사하였다.
그는 기개와 절조가 있는 인물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중종 때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1693년(숙종 19) 함창 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되었다.
부친은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 권임(權琳)이다.
1492년(성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1495년(연산군 1) 독서당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정언‧이조좌랑을 역임한 뒤 동지사의 종사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5년 대교(待敎)로서 검열 강징(姜澂)과 함께, 왕명을 내릴 때에는 승지와 사관(史官)이 반드시 참석하도록 건의하였다.
1498년 수찬에 올라 부교리를 역임하고, 1504년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종묘에 모시려 하자, 그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의금부에 하옥되어 장(杖) 60의 처벌을 받고 용궁(龍宮)에 유배되었다. 그해 11월 용궁에서 다시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던 중 옥사하였다.
그는 기개와 절조가 있는 인물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중종 때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1693년(숙종 19) 함창 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新增東國輿地勝覽
海東名臣傳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新增東國輿地勝覽
海東名臣傳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이병휴(李秉烋)
명 : "달수(達手)"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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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