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창원군(昌原君)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C3DC6D0AD70B1457X0
성명이성(李晟)
자(字)광기(廣器)
시호(諡號)여도(戾悼)
생년1457(세조 3)
졸년1484(성종 15)
시대조선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왕족
근빈 박씨(謹嬪朴氏)
처부노호신(盧好愼)

[상세내용]

창원군(昌原君)
1457년(세조 3)∼1484년(성종 15). 조선 초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성(李晟). 자는 광기(廣器).

세조의 둘째 아들로, 모친은 근빈 박씨(謹嬪朴氏)이며, 처부는 교하노씨(交河盧氏) 증찬성(贈贊成) 노호신(盧好愼)광주정씨(光州鄭氏) 증좌찬성(贈左贊成) 정익(鄭益)(주1)
처부2
선원계보기략(http://royal.kostma.net/)을 참고하여 처부2를 추가함.
판관(判官) 한찬우(韓儹禹)(주2)
처부3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하여 처부3을 추가함. 光州鄭氏族譜(2001년 신사보)에서는 처부를 정찬우(鄭纘禹)로 적고 있는데, 선원계보기략에 따르면 정찬우는 태종의 6남 희령군(熙寧君) 이타(李袉)의 아들 화성군(花城君) 이감(李堪)의 처부3이다. 처부1 김순재(金順載), 처부2 민준원(閔浚源), 처부3 정찬우(鄭纘禹).
이다.

1467년(세조 13) 창원군(昌原君)에 봉하여졌으며, 1471년(성종 2) 덕종의 맏아들 월산군(月山君)과 함께 고례(古例)에 따라 태안군의 주요한 자재(資財)를 지급받았다. 다음해에 맏형인 덕원군(德源君)과 함께 양인 방호련(方好蓮)의 교유(敎誘)를 받아 불사(佛事)를 행함으로써 종부시의 국문을 받기도 하였다.

1477년에는 온양에 목욕하러 갔다가 공주 등지를 돌아다니며 수령들을 능욕하고 역마(驛馬)를 함부로 타고 다니는 등 많은 폐단을 일으켜, 종부시의 국문을 당하고 구사(丘史: 종친 및 공신에게 驅從으로 하사하는 관노비)를 모두 빼앗겼다.

이듬해에는 노(奴)를 살해하였다는 죄로 다시 국문을 당하였다. 어려서부터 방탕(放蕩)하였으며, 궁중의 예법을 따르지 않고 재상들을 자주 능욕하였으며, 정희왕후(貞熹王后: 세조의 비)가 이를 책망하였으나 뉘우치지 못하고 노를 살해하는 등 나라의 법을 어김이 많았다.

아들이 없어 그의 형인 덕원군의 아들 이활(李𤂾)로 양자를 삼았다. 시호는 여도(戾悼)이다.

[참고문헌]

睿宗實錄
成宗實錄
璿源系譜
燃藜室記述

[집필자]

이희권(李羲權)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2-06-15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하여 처부2를 추가함.[수정자: 이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