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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여익(宋汝翼)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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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원량(元亮)
호(號)동파(東坡)
생년1454(단종 2)
졸년1528(중종 23)
시대조선전기
본관은진(恩津)
활동분야학생 > 유생
송순년(宋順年)
조부송계사(宋繼祀)
증조부쌍청당(雙淸堂)
증조부송유(宋愉)
고조부송극기(宋克己)
처부이훈(李塤)
처부김령(金玲)
외조부김맹헌(金孟獻)

[상세내용]

송여익(宋汝翼)
1454년(단종 2)∼1528년(중종 23).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원량(元亮), 호는 동파(東坡).

판원사(判院事) 송대원(宋大原)의 후예다. 고조는 생원(生員) 송극기(宋克己)이고, 증조부는 호분위사정(虎賁衛司正)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이다. 조부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송계사(宋繼祀)이고, 부친은 예조정랑(禮曹正郞) 송순년(宋順年)이다. 외조부는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 김맹헌(金孟獻)이다.

송여해(宋汝諧)와 더불어 이른 나이에 학업이 성취되어 1472년(성종 3)에 함께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성질과 도량이 온자하고 태도가 단정하고 근엄하였다. 소과에 급제한 사람들에 따라서 교유하니 대개 조정에 벼슬하는 사람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쌍벽(雙璧)이라고 지목하였다. 나이 겨우 30에 풍병(風病: 고혈압)을 앓아서 5-6년을 치료하여 다 나았다. 그러나 대과와 현달에는 뜻을 끊고 초옥에서 사람의 됨됨을 수양하고 농사에 뜻을 두었다. 성질이 또한 순박하고 독실하여 부모를 섬기고 형제에 처하매 다 화평하고 순탄하였다. 부화하고 말단적인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몸을 가짐에는 한결같이 공손하고 검소하게 하였다. 비록 산업에 대하여 구구하고 악착스럽게 하지는 않았으나 누만금(累萬金)의 재산을 쌓았다. 그러나 스스로를 위하여 쓰지 않고 남을 위하여 쓰는데 기쁨을 느꼈다. 또 의약(醫藥)에 밝아서 마을에 환자가 있으면 극력 도와서 살려 주었다. 몸은 비록 현달하지는 못하였으나 사람을 구제한 공은 많았다.

초취(初娶)는 좌참찬(左參贊) 이훈(李塤)의 딸로 2녀를 두었다. 첫째 딸은 고창현감(高敞縣監) 윤추(尹樞)에게 시집가서 윤광부(尹光富)를 낳았고, 둘째 딸은 참봉(參奉) 임세창(林世菖)에게 출가하였다. 후취(後娶)는 승의랑(承義郞) 김령(金玲)의 딸이니 1남 1녀를 두었는데 큰 딸은 급제한 김정(金淨)에게 출가하였다. 아들 김세일(金世一)은 1519년(중종 14) 기묘에 진사(進士)에 합격하였다. 학문과 재능이 있어서 바로 등용되었을 터인데 1526년(중종 21) 병술년에 병으로 요절하였다. 사위 김정이 1521년(중종 16)의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사사되는 것을 겪고, 또 아들마저 먼저 보내고 여러 해를 개탄하다가 12월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鄭文翼公遺稿(鄭光弼)
海東人物志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