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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鄭淮)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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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청경(淸卿)
생년1450(세종 32)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영일(迎日)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자제(鄭自濟)
조부정연(鄭淵)
증조부정홍(鄭洪)
외조부이순몽(李順蒙)

[상세내용]

정회(鄭淮)
1450년(세종 32)∼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청경(淸卿). 정홍(鄭洪)의 증손으로, 조부는 정연(鄭淵)이고, 부친은 정자제(鄭自濟)이며, 모친은 이순몽(李順蒙)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475년(성종 6)에 검열을 역임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중시 문과에 장원하였으며, 검토관(檢討官)으로서 활동하던 과정에서 호랑이 가죽 1장이 하사되었다. 1483년(성종 13)에는 병조정랑(兵曹正郞)을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1488년(성종 19)에는 성종이 선농단(先農壇)에 친히 제사지낼 때에 예식을 집행하기도 하였다. 그 해 사간(司諫)을 역임하였다. 1490년(성종 21)에는 경연관(經筵官)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어머니 사후에 재산을 은닉하고 여동생을 사주하여 형을 해치려 하였다는 비난을 형수에 의하여 받았다.

이것이 조정에 알려짐으로써 형조에서 진위를 파악하고자 하였는데, 형 정진(鄭溱)의 음모였음이 밝혀졌다. 1491년(성종 21)에는 직제학(直提學)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에 있었던 형과 여동생 간의 재산 싸움을 중재하지 못한 도덕적인 책임을 들어 파직하여줄 것을 자청하였으나, 성종이 들어주지 않았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