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폐비윤씨(廢妃尹氏)

[요약정보]

UCIG002+AKS-KHF_24D3D0BE44C724B1445X0
생년?(미상)
졸년1482(성종 13)
시대조선전기
본관함안(咸安)
활동분야왕실 > 궁인
윤기무(尹起畝)
묘소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신동(元新洞)

[상세내용]

폐비윤씨(廢妃尹氏)
미상∼1482년(성종 13). 본관은 함안(咸安).

성종(成宗)의 계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이다. 판봉상시사 윤기무(尹起畝)의 딸이다. 성종보다 12살 많았다고 하나 생년은 정확하지 않다.처음에 입궐하여 성종의 후궁이 되었을 때, 대왕대비 정희왕후와 왕대비 인수대비[昭惠王后]를 잘 봉양하여 두 사람의 총애를 받았다.

1474년 공혜왕후가 승하함에 따라 왕비가 되었으며 1476년에 중궁으로 봉해진다.

폐비윤씨는 평소에 질투심이 많았다고 한다. 실록에는 폐비윤씨의 죄가 매우 자세히 열거되어 있다. 인형(人形)을 만들어 저주(詛呪)한 일, 음조(陰助)의 공은 없고, 투기(妬忌)하는 마음만 가진 일, 몰래 독약(毒藥)을 품고서 궁인(宮人)을 해치고자 한 일, 무자(無子)하게 하는 일이나, 반신불수(半身不遂)가 되게 하는 일, 그리고 무릇 사람을 해(害)하는 방법을 작은 책에 써서 상자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일이 발각된 일, 엄소용, 정소용이 서로 통하여 윤씨(尹氏)를 해치려고 모의한 내용의 언문(諺文)을 거짓으로 만들어서 고의로 권씨(權氏)의 집에 던져 넣은 일, 왕을 바라볼 때 낯빛을 온화하게 하지 않았으며, 혹은 나의 발자취를 취하여 버리고자 한다고 말하였으며, 상참(常參)으로 조회를 받는 날에는 비(妃)가 왕보다 먼저 일찍 일어나야 마땅할 것인데도, 조회를 받고 안으로 돌아온 뒤에 일어난 일 등등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1479년 음력 6월 2일에 윤씨는 폐위되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그녀가 폐서인이 된 이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있는 점, 세자의 생모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그녀를 살려두려고 하였으나, 성종의 모후인 소혜왕후엄숙의, 정숙용 등의 사주로 인해 궁녀들이 성종에게 허위 보고를 하면서 1482년 음력 8월 16일, 결국 사약을 받아 사사되고 말았다.

연산군에 의해 제헌왕후(齊憲王后)에 추숭되고, 그녀의 묘는 회릉(懷陵)이라는 이름을 받았으나, 중종 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연산군이 그의 어머니 윤씨에게 내린 관작 또한 모두 폐위되어 원상복귀 되었고, 회릉 역시 폐비윤씨지묘(廢妃尹氏之墓)로 격하되었다.

폐비윤씨지묘는 오늘날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신동(元新洞)서삼릉 경내에 있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燃藜室記述

[집필자]

심량근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