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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행(金係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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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취사(取斯)
호(號)보백당(寶白堂)
시호(諡號)정헌(定獻)
생년1431(세종 13)
졸년1517(중종 12)
시대조선전기
본관안동(安東[新])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삼근(金三近)

[상세내용]

김계행(金係行)
1431년(세종 13)∼1517년(중종 1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취사(取斯), 호는 보백당(寶白堂).

부친은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이다.

1447년 진사가 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김종직(金宗直)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익혔다.

그뒤 성주충주향학교수를 지냈고 1480년(성종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합격하고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에 제수되어 직언을 잘하였다. 이어서 고령현감이 되어 선정을 펴고 내직으로 옮겨 홍문관부수찬이 되었으며, 그뒤 삼사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며 간쟁업무에 힘썼다.

1498년(연산군 4) 대사간에 올라 권간(權奸)을 극론하였으나 훈구파에 의해 제지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으로 낙향하였다. 풍산사제(蘴山笥堤) 위에 조그만 정자를 지어 ‘보백당(寶白堂)’이라 하고 학생을 모아 가르치니 보백선생(寶白先生)이라 불리었다.

김종직 등과 교유한 것으로 말미암아 무오사화‧갑자사화에 연루되어 투옥되었으나 다행히 큰 화는 면하였다.

1706년(숙종 32) 지방유생들이 그의 덕망을 추모하여 안동묵계서원(黙溪書院)을 짓고 향사하였다.

1859년(철종 10)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經山集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