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명(河友明)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58C6B0BA85B1413X0 |
호(號) | 연당(蓮塘) |
생년 | 1413(태종 13) |
졸년 | 1493(성종 24)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진양(晉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하연(河演) |
[상세내용]
하우명(河友明)
1413년(태종 13)∼1493년(성종 24). 본관은 진양(晉陽), 호는 연당(蓮塘).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 하연(河演)의 3남이다. 사헌부감찰(監察), 철원부사를 거쳐, 41세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使)를 지내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院使)에 이르렀다.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향리인 신천동에 은거하였다. 그 후 벼슬에 뜻이 없어 세조가 두 번씩이나 도진무절제사(都鎭撫節制使)에 등용코자 하였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지방관이 그의 효행을 상신하자 나라에서 정각을 세우고 호역(戶役)을 면제해 주었다. 이 정각이 하우명효자정각으로 시흥시 향토유적 제11호이다.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 하연(河演)의 3남이다. 사헌부감찰(監察), 철원부사를 거쳐, 41세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使)를 지내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院使)에 이르렀다.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향리인 신천동에 은거하였다. 그 후 벼슬에 뜻이 없어 세조가 두 번씩이나 도진무절제사(都鎭撫節制使)에 등용코자 하였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지방관이 그의 효행을 상신하자 나라에서 정각을 세우고 호역(戶役)을 면제해 주었다. 이 정각이 하우명효자정각으로 시흥시 향토유적 제11호이다.
[참고문헌]
진양하씨대동문헌록(河柱烔 편 1969)
시흥시 문화관광
시흥시 문화관광
[집필자]
전종헌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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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