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종직(丘從直)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D6CC885C9C1B1394X0 |
자(字) | 정보(正甫) |
시호(諡號) | 안장(安長) |
생년 | 1404(태종 4) |
졸년 | 1477(성종 8)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평해(平海)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구양선(丘揚善) |
증조부 | 구천우(丘天雨) |
공신호 | 원종공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구종직(丘從直)
1404년(태종 4)∼1477년(성종 8).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정보(正甫). 고려 때의 판서 구천우(丘天雨)의 증손, 증의정부우찬성 구양선(丘揚善)의 아들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정과로 급제하고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에 제수되었다.
1447년 영동현감, 1455년(단종 3) 좌헌납, 1456년(세조 2) 1월 조봉대부(朝奉大夫) 행좌헌납, 다음해 8월 원종공신 3등에 책록, 곧 낙안군수(樂安郡守)로 파견, 성균관사성으로 입조하였다가 1462년 다시 고성군수로 나갔다.
1465년 10월 성균관직강으로 있을 때 세조와의 역리강론(易理講論)으로 인정을 받고 첨지중추부사 겸 사성에 발탁되었으며, 이후 친강(親講)때마다 역리를 논하는 영광을 입었다.
1466년 2월에 공조참판, 6월에 수공조판서가 되었으며, 8월에 등준시(登俊試)에 급제하고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다.
1467년 행호군(行護軍)으로서 새로이 제정한 형전(刑典)을 교정하고, 이어서 행첨지중추부사, 1468년에 행지중추부사, 1469년에 성종이 즉위하자 행첨지중추부사 겸 지경연사, 1471년(성종 2) 경연 때의 언사로 대간의 탄핵을 받고 경연직을 박탈당하면서 행상호군, 이듬해 나이 70을 이유로 치사(致仕)를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으며, 벼슬이 좌찬성에까지 이르렀다. 문장이 뛰어나고 역학과 경학에 밝았다.
일화로서 문과에 오른 뒤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로 있을 때, 하루는 숙직을 하다가 경회루의 경치가 매우 좋다는 말을 듣고 평상복으로 경회루 연못가를 산책하였다. 때마침 세종이 내시 몇 사람을 거느리고 그곳에 나타났으므로 황급히 왕 앞에 엎드렸다.
그러자 세종은 그의 신분과 밤중에 경회루에 나와 있는 까닭을 묻고는 “경전을 외울 줄 아느냐?”고 물으므로, 그가 『춘추』 한권을 줄줄 암송하니, 세종은 크게 감탄하고, 이튿날 그를 교서관부교리에 임명, 9품직인 정자에서 하루아침에 종5품직인 홍문관부교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시호는 안장(安長)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정과로 급제하고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에 제수되었다.
1447년 영동현감, 1455년(단종 3) 좌헌납, 1456년(세조 2) 1월 조봉대부(朝奉大夫) 행좌헌납, 다음해 8월 원종공신 3등에 책록, 곧 낙안군수(樂安郡守)로 파견, 성균관사성으로 입조하였다가 1462년 다시 고성군수로 나갔다.
1465년 10월 성균관직강으로 있을 때 세조와의 역리강론(易理講論)으로 인정을 받고 첨지중추부사 겸 사성에 발탁되었으며, 이후 친강(親講)때마다 역리를 논하는 영광을 입었다.
1466년 2월에 공조참판, 6월에 수공조판서가 되었으며, 8월에 등준시(登俊試)에 급제하고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다.
1467년 행호군(行護軍)으로서 새로이 제정한 형전(刑典)을 교정하고, 이어서 행첨지중추부사, 1468년에 행지중추부사, 1469년에 성종이 즉위하자 행첨지중추부사 겸 지경연사, 1471년(성종 2) 경연 때의 언사로 대간의 탄핵을 받고 경연직을 박탈당하면서 행상호군, 이듬해 나이 70을 이유로 치사(致仕)를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으며, 벼슬이 좌찬성에까지 이르렀다. 문장이 뛰어나고 역학과 경학에 밝았다.
일화로서 문과에 오른 뒤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로 있을 때, 하루는 숙직을 하다가 경회루의 경치가 매우 좋다는 말을 듣고 평상복으로 경회루 연못가를 산책하였다. 때마침 세종이 내시 몇 사람을 거느리고 그곳에 나타났으므로 황급히 왕 앞에 엎드렸다.
그러자 세종은 그의 신분과 밤중에 경회루에 나와 있는 까닭을 묻고는 “경전을 외울 줄 아느냐?”고 물으므로, 그가 『춘추』 한권을 줄줄 암송하니, 세종은 크게 감탄하고, 이튿날 그를 교서관부교리에 임명, 9품직인 정자에서 하루아침에 종5품직인 홍문관부교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시호는 안장(安長)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成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端宗實錄
世祖實錄
成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한충희(韓忠熙)
명 : "종직(從直)"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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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