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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韓惠)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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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403(태종 3)
졸년1431(세종 13)
시대조선전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한상경(韓尙敬)
조부상당군(上黨君)
조부한수(韓修)
증조부한공의(韓公義)
외조부오준량(吳俊良)
묘소남양주 진접읍 금곡리

[상세내용]

한혜(韓惠)
1403년(태종 3)∼1431년(세종 1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증조부는 한공의(韓公義)이고, 조부는 수충찬화공신(輸忠贊化功臣) 상당군(上黨君) 한수(韓修)이며, 부친은 개국공신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상경(韓尙敬)이다. 모친은 오준량(吳俊良)의 딸이며, 전처는 이수(李穗)의 딸이고, 후처는 성달생(成達生)의 딸이다.

1414년(태종 14) 갑오식년사마시(甲午式年司馬試)에 생원(生員)으로 합격하고, 음직(蔭職)으로 벼슬에 나가 종묘서령(宗廟署令)으로 1417년(태종 17) 4월에 거행된 정유식년문과(丁酉式年文科)에 을과(乙科) 1등으로 급제하였다. 1419년(세종 1) 겸지사간원사(兼知司諫院事)를 지내고 다음해 동부대언(同副代言)좌대언(左代言) 등을 역임하였다.

임금이 각별히 신임하여 상왕과 초가정자에서 정사를 나누며 술자리를 할 때나 매사냥을 나설 때 대동했다. 또 당시 우의정 이원 등이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반송정(盤松亭)에서 진법(陳法)을 연습하니 임금이 한혜에게 명하여 선온(宣醞)을 가지고 가서 위로하게 하였다.

1423년 부친 한상경이 죽자, 그는 부친의 공신 봉작을 승습하여 청산군(淸山君)에 봉해졌다. 1426년 병조참의(兵曹參議), 다음해에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내고 1428년 10월 좌군총제(左軍摠制)에 올랐다. 그 해 11월에는 절일사(節日使)에 임명되어 건어물 등의 방물을 가지고 명나라에 다녀왔다. 1429년에는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나갔고, 1430년 간신배의 불의함을 참지 못하여 해임되었으나, 같은 해 12월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에 제수되었다. 그 다음해인 1431년 3월에 2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묘는 남양주 진접읍 금곡리에 있다.

[참고문헌]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榜目
南楊州市誌

[집필자]

김영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