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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충(鄭守忠)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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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부(敬夫)
시호(諡號)문절(文節)
생년1401(태종 1)
졸년1469(예종 1)
시대조선전기
본관하동(河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제(鄭提)
광주김씨(光州金氏)
외조부김약채(金若采)
공신호좌익공신(佐翼功臣)

[상세내용]

정수충(鄭守忠)
1401년(태종 1)∼1469년(예종 1).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경부(敬夫).

부친은 감찰 정제(鄭提)이며, 모친은 광주김씨(光州金氏)관찰사 김약채(金若采)의 딸이다.

경사(經史)에 널리 통하고 재행(才行)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환관(宦官)들을 교육하였고, 뒤에는 세종의 명으로 영응대군(永膺大君) 염(琰)을 가르쳤다.

승의부위사정(丞義副尉司正)경창부승(慶昌府丞) 등을 거쳐 1449년(세종 31) 수부사직으로 경창부승을 겸하였다.

1450년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승문원부교리가 되어 수양대군을 따라 집현전에 나아가서 『역대병요(歷代兵要)』를 찬하였고, 그뒤 훈련원주부서학교수(西學敎授)성균관사예 등을 거쳤다.

1453년(단종 1) 행사용(行司勇)으로서 수양대군단종의 보좌세력인 황보 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 원로대신을 살해, 제거하는 데 가담하여 6품직에서 4품직으로 승진되고, 1455년(세조 1)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이듬해 성균관사성이 되고, 1457년 집현전직제학으로 승진, 하원군(河原君)에 봉하여졌다.

1457년 첨지중추원사가 되고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승진하였고,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이해 의경세자(懿敬世子)가 죽자 세조의 명으로 주상자(主喪者)가 되었다. 청렴 검소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文宗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睿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大邱邑誌

[집필자]

이재호(李載浩)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