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고(玉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625ACE0FFFFB1382X0 |
자(字) | 대수(待售) |
호(號) | 응계(凝溪) |
생년 | 1382(우왕 8) |
졸년 | 1436(세종 18)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의령(宜寧)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옥사미(玉斯美) |
[상세내용]
옥고(玉沽)
1382년(우왕 8)∼1436년(세종 18).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대수(待售), 호는 응계(凝溪). 옥사미(玉斯美)의 아들이다.
길재(吉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생원시를 거쳐 1399년(정종 1)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그뒤 성균관의 학유‧학정‧박사‧전적과 안동부통판(安東府通判) 등을 거쳐 1408년(태종 8) 경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 1420년(세종 2) 집현전의 설치와 함께 재행이 있다 하여 교리에 선보(選補)되었으며, 사간원정언‧예조정랑‧황해도문민질고사(黃海道問民疾苦使)‧봉상시소윤(奉常寺少尹)‧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고 대구에 은거하였다.
성품이 청렴결백할 뿐만 아니라, 총명한 자질로 학문에 힘써 명망이 높았다.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안동의 묵계서원(黙溪書院)에 제향되었다.
길재(吉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생원시를 거쳐 1399년(정종 1)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그뒤 성균관의 학유‧학정‧박사‧전적과 안동부통판(安東府通判) 등을 거쳐 1408년(태종 8) 경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 1420년(세종 2) 집현전의 설치와 함께 재행이 있다 하여 교리에 선보(選補)되었으며, 사간원정언‧예조정랑‧황해도문민질고사(黃海道問民疾苦使)‧봉상시소윤(奉常寺少尹)‧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고 대구에 은거하였다.
성품이 청렴결백할 뿐만 아니라, 총명한 자질로 학문에 힘써 명망이 높았다.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안동의 묵계서원(黙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韓國人의 族譜(日新閣, 1977)
世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韓國人의 族譜(日新閣, 1977)
[집필자]
한충희(韓忠熙)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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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