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안지(安止)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C548C9C0FFFFB1384X0
자(字)자행(子行)
호(號)고은(皐隱)
시호(諡號)문정(文靖)
생년1384(우왕 10)
졸년1464(세조 10)
시대조선전기
본관탐진(耽津)
활동분야문신 > 문신
안사종(安士宗)

[상세내용]

안지(安止)
1384년(우왕 10)∼1464년(세조 1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탐진(耽津: 康津). 자는 자행(子行), 호는 고은(皐隱).

찬성 안사종(安士宗)의 아들이다.

1414년(태종 14)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박사가 되고, 1416년 다시 중시에 급제하여, 예문관수찬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445년(세종 27) 공조참판으로 권제(權踶)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고, 이듬해 호조참판으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집현전부제학이조참판을 거쳐 공조판서에 올랐으나 사필(史筆)의 일로 고신(告身)을 환수당하였다.

1455년(세조 즉위)에 소환되어 지중추원사가 되고, 이어 영중추부사에 올랐다. 세조가 즉위한 뒤 그를 불러 관작을 주니, 그때 그의 나이 80세가 넘었는데도 강건하므로 세조가 기뻐하여 시를 지어 하사하였다.

그는 시를 지을 때 속된 말을 섞어서 빨리 잘 짓고, 짧은 서간에까지도 거의 시로 말뜻을 이끌어갔다.

그는 또 해서를 잘 써서 일찍이 세종의 명으로 태종을 위하여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베꼈다. 뒤에 경산조곡서원(早谷書院)에 제향되고,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世祖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筆苑雜記

[집필자]

박천규(朴天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