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李時亨)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2DCD615U9999X0 |
자(字) | 순천(順天) |
호(號) | 오계(梧溪)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시대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상세내용]
이시형(李時亨)
생졸년 미상. 자는 순천(順天), 호는 오계(梧溪).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여묘(廬墓) 살이를 하며 피눈물을 흘러 그 때문에 초목이 모두 말라버렸다. 신미년에 융복(戎服)으로 군(郡)에 들어 적(賊)과 한 번 대결하기를 원하자, 주쉬(主倅) 윤민동(尹敏東)이 평소 공의 무략(武略)를 알아 운량감(運糧監)으로 차출하였다.
정주(定州)에 이르자 성곽이 견고하고 군병이 강하여 두려워 접근할 수 없었는데, 공이 화공(火攻)을 설치하여 공을 세웠다. 이로부터 군무(軍務)를 위임하여 공평하게 헤아리니 난리가 드디어 평정되었다. 하지만 여러 장군에게 공을 돌리고 자신을 자랑하지 않자, 도순사(都巡使)가 계책을 낸 공훈을 계문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청주(淸州)의 북쪽에 두 개 반의 사람이 있으니 김견신(金見臣)과 공(公)이 각각 1개이고, 최신엽(崔信燁)이 반개이다.” 하였다. 부호군(副護軍)으로 승직(陞職)되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여묘(廬墓) 살이를 하며 피눈물을 흘러 그 때문에 초목이 모두 말라버렸다. 신미년에 융복(戎服)으로 군(郡)에 들어 적(賊)과 한 번 대결하기를 원하자, 주쉬(主倅) 윤민동(尹敏東)이 평소 공의 무략(武略)를 알아 운량감(運糧監)으로 차출하였다.
정주(定州)에 이르자 성곽이 견고하고 군병이 강하여 두려워 접근할 수 없었는데, 공이 화공(火攻)을 설치하여 공을 세웠다. 이로부터 군무(軍務)를 위임하여 공평하게 헤아리니 난리가 드디어 평정되었다. 하지만 여러 장군에게 공을 돌리고 자신을 자랑하지 않자, 도순사(都巡使)가 계책을 낸 공훈을 계문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청주(淸州)의 북쪽에 두 개 반의 사람이 있으니 김견신(金見臣)과 공(公)이 각각 1개이고, 최신엽(崔信燁)이 반개이다.” 하였다. 부호군(副護軍)으로 승직(陞職)되었다.
[참고문헌]
海東人物志
[집필자]
주정순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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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