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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손(李德孫)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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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첩(李帖)
시호(諡號)장숙(莊淑)
생년?(미상)
졸년1301(충렬왕 27)
시대고려후기
본관합천(陜川)
활동분야관료 > 총신
이순목(李淳牧)

[상세내용]

이덕손(李德孫)
미상∼1301년(충렬왕 27). 고려 충렬왕 때의 폐행(嬖幸). 본관은 합천(陜川).

말년에 이름을 몽고식으로 고쳐 이첩(李帖)이라 하였다. 우복야 한림학사 승지(右僕射翰林學士承旨)를 지낸 이순목(李淳牧)의 아들이며, 형제로는 신손(信孫)의손(義孫) 등이 있다.

또한, 아들 설(偰)충숙왕찬성사에 올랐으며, 딸은 충렬왕 때의 권신이던 송빈(宋玢)의 아들 인(璘)에게 출가하였다. 처음 관직에 나간 경로는 확인되지 않으나 1268년(원종 9) 임연(林衍) 등이 김준(金俊)을 제거하는 데 참여하였으며, 이후 어사잡단(御史雜端)경상전라충청도안찰사(按察使)를 지냈다.

1279년(충렬왕 5)경 판도총랑(版圖摠郞)으로서 동경유수(東京留守)에 부임하였는데, 때마침 일본정벌을 독려하기 위하여 행차하였던 충렬왕에게 공억(供億)을 잘하여 부윤으로 승진하였다.

또한, 1285년 경상도왕지사용별감(王旨使用別監)으로 있으면서 수탈을 과중히 하여 그것으로써 왕의 총애를 얻어 곧 위위윤(衛尉尹)에 초수(超授)되었다.

1291년 내료(內僚)에게 청탁하여 승지가 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곧 서북면지휘사로 나갔다.

그뒤 응양군상장군(鷹揚軍上將軍)삼사우사(三司右使) 등을 거쳐 1296년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가 됨으로써 재추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승진을 거듭하여 1300년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가 되었으나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찬성사치사(贊成事致仕)로 되었다. 본인과 처 유씨(庾氏)의 묘지명이 남아 있다. 시호는 장숙(莊淑)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韓國金石文追補(李蘭暎, 中央大學校出版部, 1968)

[집필자]

이익주(李益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