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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화(劉福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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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유복화(劉福和)
생졸년 미상. 고려의 문신.

임연(林衍)원종을 폐위시킨 사건이 있었을 때 세자로서 원나라에 있던 왕을 보좌한 공이 있어 1282년(충렬왕 8) 7품인 별장(別將)으로서 5품에 통함을 허락한다는 특전을 받았다.

내료(內僚)로 있으면서 포악하기로 이름났던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 권의(權宜)와 의형제를 맺고 그를 도왔으며, 1295년에는 대장군이 되어 지후(祗候) 김지겸(金之兼)과 같이 세자(뒤에 충선왕이 됨.)가 쓸 경비를 전달하러 원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에도 세자의 혼례에 쓸 경비를 전하고 왔다.

1298년 세자가 잠시 충선왕으로 집정하자 밀직부사 판예빈시사(密直副使判禮賓寺事)에 올랐다가 한달 만에 치사하였는데, 7개월 만에 충렬왕이 복위하고 얼마 안 있어 인후(印侯) 등이 충선왕을 위하여 한희유(韓希愈) 등에게 누명을 씌운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이 일에 관련되어 파직되었다.

그러나 1300년 동지밀직사사 판도판서(同知密直司事版圖判書)에 다시 임명되었다.

1308년(충선왕 즉위) 충렬왕이 죽고 다시 충선왕이 즉위하자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충절을 바치고 위기에서 구하여준 공이 있다 하여 더욱 중용을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옥걸(朴玉杰)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