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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元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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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1302(충렬왕 28)
시대고려후기
본관원주(原州)
활동분야관료 > 총신
원부(元傅)

[상세내용]

원경(元卿)
미상∼1302년(충렬왕 28). 고려의 폐신(嬖臣). 본관은 원주(原州).

부친은 중찬(中贊) 원부(元傅)이다.

성격이 매우 호협하여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좋아하였으며, 글하는 선비는 좋아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몽고어를 배워 여러 번 충렬왕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따라 원나라에 출입하여, 원나라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중랑장(中郞將)을 거쳐 삼도인물추고별감(三道人物推考別監)으로서 공주의 뜻에 거슬려 장형을 받았다. 장군을 거쳐, 충렬왕이 1283년(충렬왕 9) 응방도감(鷹坊都監)을 설치하자 그 부사가 되어 여러 차례 매를 바치러 원나라에 다녀왔다.

다시 대장군에 올랐으며, 1292년에는 왕명으로 원나라의 요양로(遼陽路)에 가서 1259년(고종 46) 이후로 원나라에 잡혀간 사람과 물건을 조사하여 되찾아왔다. 당시 제국대장공주의 겁령구(怯怜口)로 고려에 와서 권세를 부리던 인후(印侯, 忽剌歹)와 사돈을 맺고 함께 세도를 부려 횡포를 자행하였다.

1295년 좌부승지, 그 이듬해 부밀직사사(副密直司事)에 올랐다.

1297년에는 사신으로 원나라에 가서 제국대장공주의 상(喪)을 알렸으며, 1295년에는 왕명도 없이 인후 등과 함께 만호 한희유(韓希愈) 등을 체포하였다가 파면되었다. 뒤에 삼사사(三司使)중경유수(中京留守)과의군도지휘사(果毅軍都指揮使)를 거쳐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공조판서에 올랐다.

일찍이 원나라무략장군 정동행중서성도진무(武略將軍征東行中書省都鎭撫)가 되어 금부(金符)를 받았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손홍렬(孫弘烈)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