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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잠(吳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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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初名)오자의(吳子宜)
초명(初名)오기(吳祈)
자(字)흥우(興雨)
호(號)동헌(東軒)
시호(諡號)문제(文齊)
생년1259(고종 46)
졸년1336(충숙왕 후5)
시대고려후기
본관동복(同福)
활동분야기타 > 간신
오선(吳璿)
조부오광찰(吳光札)

[상세내용]

오잠(吳潛)
1259년(고종 46)~1336년 (충숙왕 복위 5). 고려의 간신(姦臣). 본관은 동복(同福). 초명은 오자의(吳子宜) 또는 오기(吳祈). 자는 흥우(興雨), 호는 동헌(東軒).

조부는 신호위대장군 오광찰(吳光札)이고, 부친은 찬성사 오선(吳璿)이다.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승지에 이르렀다. 간신 김원상(金元祥)석천보(石天補) 등과 함께 왕이 연락(宴樂)을 좋아하는 것을 미끼로 전국에서 명기들을 뽑아들이고, 「삼장사(三藏寺)」와 「사룡(蛇龍)」 등의 노래를 지어 가무를 관람하게 하는 등으로 환심을 샀다.

그뒤 지신사(知申事)지밀직사사감찰대부 등을 거쳐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에 올랐으나, 항상 충렬충선 부자를 모함하여 이간시켰고, 어진 신하들을 모함하고 살해하여 많은 원망을 샀으나 화가 두려워 말하는 자가 없었다.

원나라의 사신인 단사관(斷事官) 티므르부카(帖木不花)가 왔을 때 전호군 원충갑(元冲甲) 등 50인과 김심(金深) 등 군관(軍官) 150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죄를 고발하고 처벌을 요구하였으나 원나라 사신에게 뇌물을 주어 무사하였다.

뒤에 김심오감량(吳監良) 등에 의하여 원나라에 압송되어 안서(安西)에 유배되었다.

충선왕 때 다시 등용되어 예문관대제학이 되었고, 1313년(충숙왕 즉위)에는 첨의평리(僉議評理)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에 올랐으며, 그 이듬해에는 삼사사(三司使)가 되었다.

1320년 찬성사가 되고 이어 구성군(龜城君)에 봉해졌다.

1321년 왕이 원나라에 갈 때 따라가서 유청신(柳淸臣)양안길(楊安吉) 등과 함께 심양왕(瀋陽王) 고(暠)의 일당이 되어 왕을 모함하였고, 1323년에는 원제(元帝)에게 고려에 행성(行省)을 설치, 국호를 폐하고 원나라의 직속령으로 할 것을 청하는 등 나라에 많은 해를 끼쳤다.

시호는 문제(文齊)이다.

[참고문헌]

益齋亂藁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손홍렬(孫弘烈)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8-11역주 고려묘지명집성(하)의 구성군(龜城君) 묘지문(墓誌文)을 참고하여 생졸년, 자, 호, 조부명 등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