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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성(金有成)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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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1307(충렬왕 33)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돈(金㻻)
출신지안성현(安城縣)

[상세내용]

김유성(金有成)
미상∼1307년(충렬왕 33). 고려 말기의 문신. 안성현(安城縣) 출신. 부친은 상서좌복야 김돈(金㻻)이며,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김우일(金于鎰)의 아버지이다.

15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덕원부서기(德原府書記)를 거쳐 동문원녹사(同文院錄事)를 역임하였다.

1273년(원종 14)에 원나라세조일본을 선무하고자 비서감(祕書監) 조양필(趙良弼)을 파견할 때 서장관으로 일본에 가서 일본을 설복시키고 귀국, 그 공으로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다.

1292년 원나라에서 홍군상(洪君祥)을 우리나라에 파견하여, 앞서 우리나라에서 포로로 잡고 있던 일본인을 돌려보낼 것과 아울러 일본을 설복시켜 원나라에 복속하도록 할 것을 종용해오자, 다시 선위사(宣慰使)가 되어 서장관 곽린(郭麟)과 함께 호송과 설복의 임무를 띠고 일본에 건너갔다가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뒤 조정에서는 그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그의 집에 세록을 주었으며, 그에게는 첨의평리(僉議評理)의 직첩을 내려주었다.

그뒤로 그의 생사를 몰랐으나 일본의 중 겡코(鉗公)에 의하여 가마쿠라(鎌倉)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