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린(郭麟)
[상세내용]
곽린(郭麟)
생졸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부친은 한림원사(翰林院事)를 지낸 곽운룡(郭雲龍)이다.
1285년(충렬왕 11) 장원으로 급제하여 문한서(文翰署)에 근무하였는데, 충직하고 문장 또한 뛰어나 인정을 받았다.
1292년 태복윤(太僕尹) 김유성(金有成)이 원나라의 조양필(趙良弼)과 함께 선유사(宣諭使)로 일본에 갈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동행하였다.
이때 일본은 동정(東征)한 데 원한을 품고 모두 붙들어두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나라에서 이 일을 민망히 여겨 관직을 주었으며, 또한 청주 지방의 추동전(湫洞田)을 하사하였으나 끝내 고려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서 죽었다.
부친은 한림원사(翰林院事)를 지낸 곽운룡(郭雲龍)이다.
1285년(충렬왕 11) 장원으로 급제하여 문한서(文翰署)에 근무하였는데, 충직하고 문장 또한 뛰어나 인정을 받았다.
1292년 태복윤(太僕尹) 김유성(金有成)이 원나라의 조양필(趙良弼)과 함께 선유사(宣諭使)로 일본에 갈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동행하였다.
이때 일본은 동정(東征)한 데 원한을 품고 모두 붙들어두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나라에서 이 일을 민망히 여겨 관직을 주었으며, 또한 청주 지방의 추동전(湫洞田)을 하사하였으나 끝내 고려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新增東國輿地勝覽
高麗史節要
新增東國輿地勝覽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대표명 | 곽린(郭麟) |
성명 | 곽린(郭麟) |
성명 : "곽린(郭麟)"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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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