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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렴(金士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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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후기
본관안동(安東[舊])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김사렴(金士廉)
생졸년 미상. 고려말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舊]).

평장사(平章事)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문장에 능하였다. 공민왕 때에 과거에 급제, 벼슬이 안렴사(按廉使)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과 교분이 두터웠을 뿐만 아니라 직간으로도 유명하였다.

신돈(辛旽)이 집권하였을 때 공경대부들이 모두 신돈을 받들고 왕이 총애하자, 상소하여 신돈이 반드시 뒤에 정사를 어지럽히고 사직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간하였다. 당시 정추(鄭樞)이존오(李存吾) 등이 신돈을 탄핵하다 쫓겨난 뒤여서, 조야가 감히 신돈의 일을 말하지 못하였는데 홀로 이를 논하여 직언했다는 소리가 높았다.

고려가 망하자 청주에 은퇴, 태조가 여러 차례 좌사간에 임명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도산(陶山)으로 옮겨 은거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名臣傳

[집필자]

박천규(朴天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