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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포(鄭誧)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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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부(仲孚)
호(號)설곡(雪谷)
생년1309(충선왕 1)
졸년1345(충목왕 1)
시대고려후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책(鄭責)
조부정해(鄭瑎)
처부최문도(崔文度)
저서『설곡시고(雪谷詩藁)』

[상세내용]

정포(鄭誧)
1309년(충선왕 1)∼1345년(충목왕 1). 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부(仲孚), 호는 설곡(雪谷).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정해(鄭瑎)의 손자로, 판선공(判繕工) 정책(鄭責)의 아들이며, 최문도(崔文度)의 사위이다.

1326년(충숙왕 13) 과거에 급제하였고, 얼마 뒤 예문수찬으로 원나라에 표(表)를 올리러 가다가 마침 원나라에서 귀국중이던 충숙왕을 배알하게 되어 총애를 받게 되었다.

충혜왕전리총랑(典理摠郞)에서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가 되었으나, 당시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자 상소하였다가 도리어 파면당하였다.

이때 어떤 이가 정포원나라로 망명하려 한다는 참언을 하여 끝내 울주(蔚州: 지금의 울산)로 유배당하였다.

유배중에도 오히려 태연자약하여 활달한 장부의 기질을 잊지 않고 풍류생활을 즐겼다.

유배지에서 풀리자 다시 출세의 의지를 가지고 원나라에 건너갔으며, 원나라 승상인 별가불화(別哥不花, 別哥普化)가 그를 한번 보고 매우 호감을 가지게 되어 원나라 임금에게 추천하였으나, 그뒤 얼마 안 되어 37세의 나이로 죽었다.

최해(崔瀣)의 문인으로 이곡(李穀) 등과 사귀며 시문과 글씨에 뛰어난 재질을 보였다.

그러나 문집인 『설곡시고(雪谷詩藁)』가 전하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문학과 사상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이제현(李齊賢)이 쓴 「설곡시서(雪谷詩序)」에서 정포의 불행하였던 일생에 대하여 애석해하는 글귀들이 나타나는바, 이를 통하여 그의 인물됨과 재식(才識)의 일단을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이색(李穡)의 「설곡시고서(雪谷詩藁序)」에서 그의 시를 “맑아도 고고(苦孤)하지 않고, 화려해도 음탕하지 않아, 사기(辭氣)가 우아하고 심원하여 결코 저속한 글자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 하여, 높은 수준의 시경(詩境)을 성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나, 그러한 인생체험을 품격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新增東國輿地勝覽
益齋亂藁
牧隱集
東文選

[집필자]

박노춘(朴魯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