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도(崔文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D5CBB38B3C4D1345X0 |
자(字) | 희민(羲民) |
호(號) | 춘헌(春軒) |
시호(諡號) | 양경(良敬) |
생년 | ?(미상) |
졸년 | 1345(충목왕 1)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관 |
부 | 최성지(崔誠之) |
조부 | 최비일(崔毗一) |
[상세내용]
최문도(崔文度)
미상∼1345년(충목왕 1). 고려의 문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희민(羲民), 호는 춘헌(春軒). 찬성사대제학(贊成事大提學) 최비일(崔毗一)의 손자이며, 최성지(崔誠之)의 아들이다.
일찍이 원나라에 가서 숙위(宿衛)하였으며, 몽고의 말과 글에 능통하였다.
1320년(충숙왕 7) 충선왕이 토번(吐蕃: 西藏)에 유배되었을 때 아버지와 함께 다녀왔으며, 귀국 후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그뒤 사신으로 평양과 쌍성(雙城)에 주재하였고, 1344년(충목왕 즉위)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이르렀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호는 양경(良敬)이다.
일찍이 원나라에 가서 숙위(宿衛)하였으며, 몽고의 말과 글에 능통하였다.
1320년(충숙왕 7) 충선왕이 토번(吐蕃: 西藏)에 유배되었을 때 아버지와 함께 다녀왔으며, 귀국 후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그뒤 사신으로 평양과 쌍성(雙城)에 주재하였고, 1344년(충목왕 즉위)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이르렀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호는 양경(良敬)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손홍렬(孫弘烈)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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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