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량(庾資諒)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20C790B7C9B1150X0 |
| 자(字) | 담연(湛然) |
| 생년 | 1150(의종 4) |
| 졸년 | 1229(고종 16) |
| 시대 | 고려중기 |
| 본관 | 무송(茂松)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유응규(庾應圭) |
| 조부 | 유필(庾弼) |

[상세내용]
유자량(庾資諒)
1150년(의종 4)∼1229년(고종 16). 고려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담연(湛然).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유필(庾弼)의 손자이며, 공부시랑 유응규(庾應圭)의 아들이다. 성품이 장중하고 말이 없었다고 한다.
16세 때부터 유가(儒家)의 자제들과 교우하였으나 무인(武人)들과도 교제를 하여,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화를 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와 교우하던 사람들도 모두 화를 면하였다.
음보(蔭補)로 수궁서승(守宮署丞)이 되었으며, 이어 대악서승(大樂署丞)을 거쳐 용강현령(龍岡縣令)이 되어서는 행정을 밝게 잘 처리하였다고 한다.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상의봉어(尙衣奉御)‧시어사(侍御史)‧호부낭중‧어사잡단(御史雜端)을 거쳐 대부소경(大府少卿)‧병부시랑‧형부시랑‧대부경(大府卿)‧지삼사사(知三司事)‧판대부사재사(判大府司宰事)‧태자첨사(太子詹事)‧판각문사(判閣門事)‧지다방사(知茶房事)를 역임하였고, 고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가 되어 치사(致仕)하였다.
치사 후에는 은퇴한 재상들과 기로회(耆老會)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또한 부처를 독실히 신봉하였다.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유필(庾弼)의 손자이며, 공부시랑 유응규(庾應圭)의 아들이다. 성품이 장중하고 말이 없었다고 한다.
16세 때부터 유가(儒家)의 자제들과 교우하였으나 무인(武人)들과도 교제를 하여,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화를 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와 교우하던 사람들도 모두 화를 면하였다.
음보(蔭補)로 수궁서승(守宮署丞)이 되었으며, 이어 대악서승(大樂署丞)을 거쳐 용강현령(龍岡縣令)이 되어서는 행정을 밝게 잘 처리하였다고 한다.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상의봉어(尙衣奉御)‧시어사(侍御史)‧호부낭중‧어사잡단(御史雜端)을 거쳐 대부소경(大府少卿)‧병부시랑‧형부시랑‧대부경(大府卿)‧지삼사사(知三司事)‧판대부사재사(判大府司宰事)‧태자첨사(太子詹事)‧판각문사(判閣門事)‧지다방사(知茶房事)를 역임하였고, 고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가 되어 치사(致仕)하였다.
치사 후에는 은퇴한 재상들과 기로회(耆老會)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또한 부처를 독실히 신봉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